통제된 집착
통제된 집착
취향은 분명히 갖되 틀렸을 가능성도 열어 둡니다. 소스와 신호 경로, 청취 조건을 확인하고 어떤 증거가 나오면 생각을 바꿀지 묻습니다. 마음에 드는 설명일수록 까다롭게 따져야겠죠. 좋아한다는 이유로 검증을 면제하기 시작하면 연구실이 아니라 신앙의 공간이 될 테니까요. 장비를 모시는 데까지 갈 생각은 없습니다.
실제로 하는 일실험하기 전에 음악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와 비교 조건부터 정합니다. 클린 게인 측정값으로 의도적인 오버로드의 결과까지 판단하지는 않아요. 새추레이션 전후의 피크만 맞추면 크레스트 팩터가 달라져 라우드니스 차이가 남을 수 있습니다. 들리는 차이와 그 원인, 개인적인 취향을 구분하려는 거죠. 노브를 돌리다 신이 났다는 사실은 측정값에 넣지 않겠습니다. 일단은요.
가사와 화성 해부실
가사와 화성 해부실
프로덕션을 구상할 때 가사부터 읽습니다. 송라이터가 가져온 멜로디를 출발점으로 삼되 어떤 말과 장면을 전하려는지 먼저 살펴요. 라임은 잘 맞는데 엉뚱한 단어만 강조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이 전환되는 지점까지 멜로디가 제대로 전해 줬으면 해요. 음절 수만 맞추는 일이면 표 계산으로 끝나겠지만 저는 노래를 만들고 싶습니다.
실제로 하는 일단어 강세와 문장 강세가 음악의 악센트와 어떻게 만나는지 봅니다. 강박보다 긴 음가나 높은 음역이 더 두드러질 수도 있고 쉼 뒤에 들어오는 한 음이 귀를 붙잡기도 해요. 강세를 일부러 비틀었다면 가사에서 그 말을 강조할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프로소디의 어긋남은 표현이 될 수 있어요. 의도치 않게 뜻까지 달라지는 건 제가 원한 실험이 아닙니다.
작업의 이유에미넴의 발음에서 제가 좋아하는 자유를 듣습니다. 모음의 길이와 자음이 놓이는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같은 가사가 전혀 다르게 들려요. 그래서 음정부터 채점하기보다 아티큘레이션이 말을 어떻게 전달하는지 듣습니다. 기타를 치면서도 배운 일이죠. 음을 전부 맞혔다고 좋은 프레이즈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실제로 하는 일코드 진행이 반복된다고 네 마디마다 정체성을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보이싱이나 전위를 바꾸거나 베이스와 성부의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리하모니제이션을 하거나 화성 리듬을 바꿀 수도 있고요. 화성은 그대로 두고 파트의 음역이나 들어오고 빠지는 시점만 조절하기도 합니다. 먼저 무엇 때문에 이 반복이 좋은지 찾습니다. 그 핵심은 남겨 두고 주변을 움직이는 거죠. 수술을 마친 루프도 자기 얼굴은 알아봐야 하니까요.
키가 바뀌어도 화성 관계를 바로 읽을 수 있도록 내슈빌 넘버 시스템(Nashville Number System)의 아라비아 숫자로 차트를 적습니다. 가수가 키를 바꾸자고 해도 처음부터 다시 적을 필요가 줄어들죠. 다만 이조하면 보컬 파트의 테시투라가 달라지고 악기에서 선택할 수 있는 보이싱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차트가 그대로라고 연주와 노래의 느낌까지 같지는 않아요. 숫자를 옮긴 뒤에는 다시 들어야 합니다.
클래식을 배우며 익힌 성부 진행도 여전히 도움이 됩니다. 독립적인 성부를 쓸 때 병행 5도를 피하라고 배운 것도 그중 하나예요. 그렇다고 록 기타를 치면서 좋아하는 음정까지 금지할 생각은 없습니다. 관습을 알고 일부러 벗어났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 듣는 쪽이 재미있어요. 우연히 좋은 소리가 나와도 물론 좋습니다. 다만 우연을 제 기법이라고 부르기 전에는 왜 됐는지 알아보고 싶어요.
템포 계산장비보다 먼저 움직이는 손
장비보다 먼저 움직이는 손
기타에서는 어떤 음을 치느냐만큼 어떻게 치느냐를 중요하게 듣습니다. 저는 여섯 줄 기타로 록과 메탈을 배웠고 폴 길버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얼터네이트 피킹과 스트링 스키핑을 자주 쓰고 어택의 리듬, 벤딩과 비브라토를 계속 파고듭니다. 빠르게 칠 수 있다고 항상 빨리 쳐야 하는 건 아니죠. 손이 신났을 때일수록 따로 확인합니다.
실제로 하는 일튜닝은 스탠더드에서 시작하고 곡에 따라 여섯 현을 모두 반음 내리거나 올립니다. 카포는 쓰지 않아요. 현 사이의 음정 관계는 유지하면서 개방현의 음높이를 목소리에 맞춰 바꾸는 방식입니다. 그래도 새 키에서 기타 파트의 음역과 역할은 다시 들어 봅니다. 손에 익은 운지라고 곡에도 잘 맞는 건 아니니까요.
아끼는 Fender Jim Root Jazzmaster에는 EMG 픽업이 달려 있어요. 스튜디오의 Ibanez RG Prestige는 패시브 DiMarzio를 씁니다. 엄밀히 말하면 친구 기타인데 거의 영주권을 얻은 상태네요. 길버트가 RG를 들고 있던 옛 아이바네즈 광고를 보면 지금도 왜 그 기타가 좋았는지 알 것 같아요.
작업의 이유익숙한 마이크를 쓰면 연주에 더 빨리 반응할 수 있습니다. SCHOEPS V4 U와 Sony ECM-100U 페어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알기 때문에 매번 마이크 비교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돼요. 선택은 프로세서를 걸기 전부터 시작되는 셈이죠. V4 U는 생김새도 마음에 듭니다. 소리가 우선이지만 눈까지 감고 고를 필요는 없잖아요.
실제로 하는 일Line Audio CM4와 Omni1은 큰 마이크를 놓기 어려운 자리에 씁니다. 스튜디오와 라이브뿐 아니라 동시녹음에서도 유용해요. 빈의 Synchron Stage에서 작업하면서 마이크 위치에 따른 차이를 더 세심하게 듣게 됐습니다. 직접음과 잔향의 비율, 오프축으로 들어오는 소리는 녹음 단계에서 잡고 싶어요. 나중에 이퀄라이징하는 것과는 결과가 다르니까요.
좋은 소스와 정교한 손질을 함께 생각하면 스시가 떠오릅니다. 재료가 좋아도 칼질이나 간, 온도, 쥐는 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죠. 녹음도 소스가 좋다는 이유로 판단을 생략할 수는 없어요. 유명한 장비 조합을 자동으로 거치기보다 지금 이 연주에 필요한 처리를 고릅니다. 비유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스네어를 숙성할 계획은 없어요.
되돌리기 부서의 관할 밖
되돌리기 부서의 관할 밖
여러 장비를 써 보고 소유했지만 프리앰플리파이어 중에서는 Black Box Analog Design MM-1을 가장 좋아합니다. 리빌드까지 거쳐서 더 각별해졌고요. 그래도 기본은 클린 녹음입니다. 클라이언트 작업은 나중에 방향이 바뀔 여지를 남겨 둡니다. 제 음반에서 원하는 소리가 분명할 때는 강하게 드라이브한 음색을 그대로 녹음해요. 믹싱에서도 그 결정을 안고 가야 하니 확신이 있을 때 선택합니다.
실제로 하는 일MM-1 리빌드에서 중요한 건 게인 구조의 어디가 달라졌느냐입니다. 원래도 서로 영향을 주는 Pentode와 Triode 단이 있고 그 뒤에 패시브 출력 감쇠가 있습니다. 새추레이션은 개조 전에도 가능했어요. 개조했다는 사실보다 어느 단에 얼마나 큰 신호를 넣어 어떤 결과를 얻는지가 궁금합니다.
제 MM-1은 Black Box Analog Design의 로버트 웨인스콧이 리빌드했습니다. 위성·마이크로파 통신 분야 경력이 있는 영화 믹서이자 엔지니어예요. 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입력 트랜스포머와 첫 진공관 단 사이에 게인 단을 추가했고 두 진공관 증폭단도 수정했습니다. 신호가 각 단에 들어가는 조건이 달라진 것이죠. 출력 레벨만 같게 맞춘다고 내부 동작까지 같아지지는 않습니다.
강한 새추레이션을 거쳐 녹음한 신호는 출력 트림을 내려도 원래의 클린 파형이나 크레스트 팩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후에 더 처리할 수는 있지만 녹음하지 않은 클린 버전까지 복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녹음 단계에서 어디까지 확정할지 정하는 기준입니다. 실행 취소는 컨버터 앞에서 벌어진 일까지 책임져 주지 않거든요.
작업의 이유어떤 장비는 장난감으로 남았고 어떤 장비는 작업 도구가 됐습니다. 도구라면 리콜과 CPU 사용량까지 따져요. 실제 세션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지가 달라지니까요. 소리가 조금 더 마음에 들어도 수정할 때마다 발목을 잡으면 곤란합니다. 안정성까지 포함해서 소리를 고르는 이유예요. 장난감 선반의 입주 심사는 좀 더 느슨합니다.
같은 밴드로 다른 세계 만들기
같은 밴드로 다른 세계 만들기
‘If I Could Drink Enough’에서는 기타와 앰프, 베이스와 드럼은 그대로 두고 두 구간의 성격을 바꿨습니다. 포스트 펑크에서 팝 펑크로 넘어갈 때 믹스와 공간감을 달리했어요. 한 곡의 흐름을 유지하면서 프로덕션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시험한 겁니다. 재료는 그대로 두고 반응 조건을 바꿔 본 셈이죠.
그 전환점에 스케이트보드 소리를 넣었습니다. 다음 벌스가 하프파이프 이야기로 시작하거든요. 제 귀에는 바로 스케이트보드였는데 은서는 테이프 녹음기 소리로 들었대요. 같은 소리를 듣는다고 제가 떠올린 장면까지 전해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하는 일가사에 ‘background noise’가 나오는 부분에는 실제로 노이즈를 깔았고 술을 단숨에 마신다는 ‘shotgun this’에는 캔 따는 소리를 넣었습니다. 은서도 그 소리들을 좋아했어요. 영화와 광고 음향 경험을 노래에 쓰는 방식입니다. 다만 노래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야 합니다. 효과음만 유난히 눈에 띄거나 없는 화면까지 상상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작업의 이유‘기다려줄게’의 도입부는 가사 속 버스 정류장에서 떠올렸습니다. 분위기를 만들고 보니 제 귀에는 정류장보다 터미널에 가까웠어요. 딸깍거리는 효과음도 직접 합성했는데 그건 그냥 소리가 좋아서 넣었습니다. 동료도 그 소리를 마음에 들어 했고요. 모든 효과음을 가사의 특정 단어와 짝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장소를 암시해도 좋고 듣는 재미를 더해도 좋습니다.
실제로 하는 일‘배가본드’의 ‘Breaking Dawn’에서는 기타 리프를 녹음해 보낸 뒤 그 파일을 반복해서 붙이는 대신 전체 파트를 다시 연주했습니다. 이후에도 좋아하게 된 방식이에요. 같은 음을 반복해도 다시 치면 타이밍과 터치가 조금씩 달라집니다. 매 마디를 새로 작곡하려는 건 아닙니다. 반복 속에 연주의 움직임을 남기고 싶어요.
‘Devil Eyes’에서는 두 후렴 앞에 페르마타를 넣고 두 번째 ‘I’m’ 부근에서는 조금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편성이 단순해서 후렴에 들어가는 시간을 조금 미루는 것만으로도 표정이 달라져요. 노트를 그리드에서 몇 틱 옮기는 것과는 다른 판단입니다. 프레이즈가 숨 쉴 시간을 의도적으로 바꾼 거죠. 소리뿐 아니라 기다리는 시간도 프로듀싱할 수 있으니까요.
‘Lullaby’에서는 묵직한 디스토션 기타 안에 가벼운 숨결의 목소리를 두고 싶었습니다. 보컬은 분명히 들리되 곡 위로 불쑥 튀어나오지 않게요. 보컬만 크게 만들면 제가 원한 관계가 흐려질 수 있어서 레벨과 엔벌로프, 공간감을 함께 판단합니다. 마음에 드는 소리라도 자리를 조금 내줘야 전체의 대비가 살아날 때가 있어요. 솔로로 들은 인상은 참고하되 결정은 곡 안에서 내립니다.
즐거운 우회로
즐거운 우회로
‘Devil Eyes’에 UAFX Golden Reverberator 리버브 페달을 쓴 이유는 재미있어서입니다. 기타리스트에게 페달은 익숙한 물건이죠. 음반을 만들 때면 하드웨어와 신시사이저처럼 직접 만지고 연주할 수 있는 것들에 손이 갑니다. 믹싱은 전부 컴퓨터 안에서 하지만 소리를 만드는 과정까지 그 안에 가둘 생각은 없어요. 이런 우회로가 있어 음반 만드는 일이 더 즐겁습니다.
페달로 보내는 드라이 센드는 먼저 Louder Than Liftoff Chroma+와 Implode Colour 모듈을 거쳤습니다. 새추레이션을 더하고 컴프레션도 강하게 걸었어요. Implode는 1176 Revision F 계열의 회로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순서예요. 완성된 잔향을 압축한 게 아니라 리버브에 들어갈 신호의 엔벌로프와 배음을 먼저 바꿨습니다. 돌아온 소리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재미있게 쓰려면 스튜디오의 입출력 조건에도 맞아야 했습니다. Universal Audio가 명시한 Golden의 최대 입력 레벨은 +12.2 dBu입니다. 라인 레벨 연결도 지원하지만 필요하면 소스의 출력을 낮춰야 하고 단자는 언밸런스 TS예요. 조건을 맞추면 스튜디오 센드로 쓸 수 있다는 뜻이지 어떤 출력이든 그대로 받아 준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단의 아날로그 회로를 드라이브하는 것과 페달 입력을 과부하시키는 것은 별개의 실험입니다.
그 소리가 세션에 들어오면 잔향이 시작하고 끝날 자리를 다시 고릅니다. 센드 오토메이션으로 새 신호만 막으면 이미 생긴 잔향은 남겨 둘 수 있어요. 리턴을 조절하면 잔향 자체를 끊을 수 있고요. 어느 음절이 공간을 열지와 그 공간을 언제 닫을지는 따로 결정합니다. 재미있게 만든 소리도 프레이즈 안에서 제 몫을 해야 하니까요.
두 자리의 청취 기준
두 자리의 청취 기준
CLA-10A는 작업 도구입니다. 매일 새로운 감동을 주기보다 제가 이해하는 기준으로 남아 있길 바라요. 주파수 응답이 평탄해졌다고 잔향 감쇠나 지향성이나 옆자리의 문제까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구성을 바꿀 때는 무엇을 고치려는지 그리고 나아졌는지 어떻게 판단할지부터 정하려고 해요. 측정하는 도중에 자를 바꾸면 저도 헷갈리니까요.
실제로 하는 일작업하는 자리와 클라이언트와 함께 듣는 자리를 따로 둡니다. 주 작업용 Avantone CLA-10A는 MOTU에 직접 연결하고 REW 측정을 참고해 본체의 레벨과 톤 컨트롤을 맞춰요. 소파 쪽 Dutch & Dutch 8c는 Dante 시스템에서 AES3(AES/EBU) 입력으로 신호를 받습니다. 룸 조정은 제조사의 REW 절차를 따릅니다. 서로 다른 두 청취 기준을 쓰되 각 자리의 조건을 분명히 구분해 두려는 구성입니다.
서로 다른 스피커 페어로 구성한 7.1.4 환경에서 두 시간이 넘는 장편영화를 믹싱한 적도 있습니다. 그 방의 특성을 아는 것이 중요했지만 익숙하다는 이유로 배치와 레벨, 시간 정렬, 음색의 일관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었어요. 스피커 사이로 이어지는 공간을 판단해야 했으니까요. 한 페어의 소리가 마음에 드는지 고르는 일과는 다른 문제였습니다.
게인 스테이징과 움직이는 표적
게인 스테이징과 움직이는 표적
보컬 오토메이션에서는 바꾸려던 것만 바꾸고 싶습니다. 자체 신호를 검출하는 컴프레서라면 디텍터 앞의 오토메이션, 컴프레서 뒤의 트림, 리버브 센드 조절은 서로 다른 작업이에요. 디텍터로 들어가는 신호를 줄이면 게인 리덕션도 줄어들어서 기대한 만큼 작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뒤에서 조절하면 그 상호작용은 그대로 두고요. 곡선을 그리기 전에 프레이즈의 어느 지점을 건드리는지부터 확인합니다.
Output이라고 적혀 있어도 레벨만 바뀐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모델링 컴프레서에서는 그 노브가 비선형 회로를 더 밀어붙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레벨 비교용 클린 트림을 따로 두고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까지 봅니다. 다음 컴프레서는 바뀐 레벨에 반응할 수 있고 외부 사이드체인을 쓴다면 검출 경로도 따로 확인해야 하니까요. 레벨만 조정했다고 결론 내리기 전에 어디까지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뒤에서 조절했다’고 할 때 그 뒤가 어디인지부터 분명해야 합니다.
보컬 레벨을 움직일 때 리버브도 얼마나 따라갈지 미리 정합니다. 센드를 어디서 분기하느냐에 따라 둘이 함께 움직일 수도 따로 움직일 수도 있어요. 레벨과 거리감, 자음의 전달력을 함께 듣습니다. 단지 작게 만들려던 프레이즈가 의도치 않게 멀어지지 않도록 오토메이션 전에 신호 경로부터 확인하는 거죠.
창고 안 소리의 위치
창고 안 소리의 위치
영화 음향에서 제가 즐기는 일은 따로 만든 소리들을 하나의 장면으로 들리게 하는 겁니다. 대사와 폴리, 환경음, 음악을 각각 작업하더라도 관객은 한 장면을 보고 듣죠. 어떤 공간인지, 무엇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가 소리에서도 일관되게 전해져야 합니다. 몇 조각을 붙였는지는 제가 알고 있으면 됩니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모든 소리를 같은 자리에서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해체’에서는 ADR과 여러 요소에 ARVerb Room을 썼고 창고 장면의 라이터 폴리도 그중 하나였어요. 공간의 성격은 같되 그 안에서 각 소리가 놓이는 위치는 달라야 했습니다. 개발자 알렉상드르 라초프와 주고받은 이야기가 그 조절을 구분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예고편에서는 일부 작업을 효과음만 따로 떼지 않고 장면 안에서 들어볼 수 있습니다.
개별 소스에 인서트할 때 라초프가 제안한 출발점은 같은 Room Size에 비슷한 Decay와 Brightness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Distance, Diffusion, Pan, Mix는 소스마다 다르게 두고요. 여기서 Distance는 직접음을 감쇠하지 않고 잔향 패턴을 바꿉니다. 직접음과 잔향의 비율은 제가 따로 맞춰야 했어요. Distance 값만 올린다고 라이터가 저절로 멀어지지는 않습니다.
ARVerb 내부의 Pan과 플러그인 뒤에서 하는 패닝도 구분합니다. 내부 Pan은 룸 모델에 영향을 주고 후단의 패닝은 처리된 출력을 옮겨요. 소스별 인서트에서는 그 차이를 고려해야 했습니다. 반면 100% 웻으로 쓰는 공용 리턴은 라우팅 조건이 다르니 같은 Mix 값을 그대로 옮겨 쓰지는 않습니다.
작업의 이유ADR은 입 모양에 맞았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대사를 주고받는 박자가 달라지면 같은 말도 다른 장면이 돼요. 말이 겹치는 순간, 끝맺지 못한 말, 늦게 돌아오는 대답이 연기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고쳐야 할 소리와 남겨야 할 리듬을 먼저 구분하고 싶어요. 음절마다 깨끗하게 닦아 놓고 장면의 맥박까지 멈춰 버리면 수술은 실패한 겁니다.
타임코드 계산배선은 간단하게
배선은 간단하게
관리에 드는 수고만큼 쓸모가 있는 신호 경로만 남깁니다. 처음에는 Dante 중심으로 스튜디오를 구성했지만 여기서 오케스트라를 녹음하는 것도 아니고 이머시브 스피커를 Dante로 연결한 것도 아니었어요. 녹음에는 MOTU와 Cranborne Audio C.A.S.T.를 써서 관리할 일을 줄였습니다. 소파 쪽에서 음악을 듣는 별도의 Dante 경로는 여전히 필요해서 남겼고요. 시스템을 하나로 통일하는 일 자체가 목표는 아닙니다.
실제로 하는 일N22와 N22H로 필요한 위치까지 C.A.S.T. 아날로그 신호를 보냅니다. 시공할 때 넣은 Cat 8 케이블은 이 용도에 필요한 성능보다 여유가 있어요. 그렇다고 케이블을 본전까지 써야 한다며 작업 방식까지 복잡하게 유지할 필요는 없겠죠. 배선은 그대로 두고 제게 필요한 방식으로 씁니다.
제 녹음 환경의 노이즈는 매우 낮습니다. 비교할 때도 실제 사용하는 소스 임피던스와 게인, 대역폭을 기준으로 봐요. 가중치를 적용한 입력 환산 노이즈와 가중치 없이 잰 출력 노이즈는 그대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원치 않는 험이나 히스와 제가 의도해서 만든 디스토션도 구별하고요. 작업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수준이라면 조건이 다른 수치의 우열을 따지는 데 시간을 더 쓰기보다 연주에 집중합니다.
연구실의 운영 체계
연구실의 운영 체계
리눅스 데스크톱도 Cockos REAPER와 같은 방식으로 다듬습니다. 마음에 드는 기본 설정에서 출발해 작업 흐름을 자꾸 끊는 부분을 바꿔요.
실제로 하는 일시계 옆에는 자정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해 두었습니다. 오늘이 얼마나 남았는지 따로 계산할 필요가 없어요. 시스템 시계의 분 단위 갱신에 맞춰 표시를 바꾸고 절전에서 깨어나거나 시각이 바뀌면 다시 계산합니다. 시간이 없다는 걸 알려 주려고 매초 셸 명령을 실행하지는 않아요. 그건 시간을 낭비하는 방법치고 제법 공들인 편이니까요.

인터페이스의 영문 글꼴은 Inter, 한글 글꼴은 Pretendard로 설정했습니다. 산세리프 대체 글꼴을 조정하되 명시적으로 지정한 글꼴이나 터미널의 고정폭 글꼴까지 덮어쓰지는 않아요. 한영 전환과 단축키, 상태 표시줄도 같은 기준으로 손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마주치는 것들이죠. 작은 불편도 자꾸 반복된다면 고칠 이유는 충분합니다.
작업의 이유소리를 듣고 판단한 뒤 손을 움직이기까지의 지체를 줄이고 싶었습니다. Cockos REAPER의 자주 쓰는 단축키는 왼손 가까이에 모으고 오른손으로는 마우스를 조작해요. 빠르게 조작하는 e스포츠 선수들을 보며 얻은 아이디어입니다. 목표는 손의 왕복과 작업 중의 망설임을 줄이는 겁니다. 보컬 테이크를 클릭 수로 이길 필요는 없으니까요.
실제로 하는 일MIDI 편집은 WASD 대신 ESDF를 중심으로 합니다. 한 칸 오른쪽이 제 손에는 더 편해요. E와 D로는 음높이를, S와 F로는 시간상의 위치를 옮깁니다. 게임에서 익힌 방향 감각을 피아노 롤에서도 유지하는 거죠. 하는 일이 바뀌어도 손이 갈 자리는 고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비슷한 편집에는 비슷한 손동작을 배치했습니다. 다만 단축키 조합에 따라 동작이 달라지고 예외도 있어요. Shift를 조합한 타이밍 조정은 픽셀 단위라 확대 비율에 따라 이동량이 달라집니다. 손에 익은 동작을 믿기 전에 편집 대상이 아이템인지 MIDI 노트인지 살피고 활성 창과 선택 범위를 확인합니다. 실수까지 빠르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트랙을 보관할 때 쓰는 액션은 선택한 트랙의 일반 트랙 FX를 오프라인으로 설정합니다. 여러 번 실행해도 상태가 뒤집히지 않아요. 마스터나 상위 폴더로 보내는 경로도 켜기와 끄기를 별도 액션으로 둡니다. 켜진 트랙과 꺼진 트랙을 함께 선택해도 원하는 상태로 맞출 수 있죠. 비교 청취용 바이패스는 토글로 남겼습니다. 정리 작업에는 결과가 정해진 명령을 쓰고 비교할 때는 상태를 오가는 쪽을 택한 겁니다.
단축키를 설계할 때는 어디에 적용할지도 함께 정합니다. 주로 쓰는 분할 액션은 선택을 바꾸지 않고 마우스 위치에서 자르며 그룹을 무시해요. 편집 커서나 선택 구간을 기준으로 자르는 액션은 따로 둡니다. Trim-behind로 교체한 아이템이 맞닿아 겹침이 없을 때는 경계를 움직여 겹치는 구간부터 만드는 크로스페이드 액션을 씁니다. 기존 겹침에 페이드만 거는 액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조건이니까요.
제 휴머나이저는 선택한 노트의 시작을 −5~+10 PPQ 틱 범위에서 움직이고 벨로시티에는 −10~+10을 적용합니다. 음높이와 길이는 유지해요. 살짝 늦는 쪽으로 기운 범위지만 그루브 프리셋처럼 믿기보다 프레이즈 안에서 들어 봅니다. 실제 시간 차이는 템포와 PPQ 해상도에 따라 달라지고 반복 실행하면 변화가 누적됩니다. 편한 버튼에도 실험 절차는 필요하죠.
스테레오와 이머시브 세션에 필요한 엔진 설정이 달라서 프로필을 전환하는 런처도 만들었습니다. Cockos REAPER의 anticipative FX processing과 오프라인 렌더링 알림 설정은 전역 설정이에요. 프로젝트를 연다고 저절로 맞춰지지 않습니다. 런처는 활성 프로젝트를 확인하고 재생 중이거나 다른 세션이 열려 있어서 적용 대상을 확신할 수 없으면 멈춥니다. 빠르게 바꿨다는 것보다 어떤 상태가 됐는지 아는 게 먼저니까요.
작업의 이유이런 기반을 만드는 데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습니다. 세션 준비와 파일 참조 검사, 익스포트 실행과 결과물 정리는 확인 절차를 갖춘 시스템에 맡길 수 있어요. 반면 곡을 쓰고 연주하고 프로듀싱하고 믹싱하는 일은 제가 이 방에 온 이유입니다. 무엇을 빨리 끝낼지보다 무엇에 시간을 쓰고 싶은지의 문제예요. 연구 조수에게 시험관 수를 세게 할 수는 있습니다. 실험까지 넘길 생각은 없어요.
마지막까지 같은 믹스로
마지막까지 같은 믹스로
목적이 달라지면 음악 자체도 달라집니다. ‘해체’의 여덟 곡은 모두 영화용과 음반용 버전이 다릅니다. 영화에서는 화면에 맞게 시간을 구성했고 사운드트랙 음반에서는 음악만 들었을 때의 흐름에 맞춰 조정했어요. 장면 안에서 제때 도착한 음악도 음반으로 들을 때는 다른 호흡이 필요할 수 있으니까요.
마스터링에 넘기기 전에 믹스 안에서 밸런스와 움직임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제 스테레오 믹스 버스에는 프로세싱을 걸지 않아요. 그렇게 만든 믹스를 신뢰하는 마스터링 엔지니어에게 보내 다른 사람의 판단을 더합니다. 제가 역할을 나누는 방식일 뿐 모두가 버스를 비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닙니다. 아직 교단을 세울 단계는 아니에요.
실제로 하는 일존 헤인즈의 납품 조언에서 눈여겨본 건 보컬 파일을 구분하는 기준입니다. 프로세싱을 적용하지 않은 리드 보컬과 컴프레션·이퀄라이징만 적용한 리드 보컬 그리고 별도의 리버브·딜레이 리턴을 나눠 두죠. 제 관심은 음색과 공간을 따로 선택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보컬의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거리감은 바꿀 수 있으니까요. ‘드라이’라고만 적으면 어디까지 처리한 파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의도한 조합을 알아야 다른 선택도 비교할 수 있어요. 표본이 탈출하기 전에 이름표부터 붙여야 합니다.
최근 LATENCY와 진행한 Apple Vision Pro 작업에서는 Cockos REAPER의 익스포트 사본을 DaVinci Resolve Studio로 넘기는 작업 흐름을 구성했습니다. 원래 믹스 세션은 보존합니다. 단계마다 소스와 구간을 정하고 샘플레이트와 채널 배치를 명시합니다. 결과물로 나와야 할 파일 목록도 명확히 해 둡니다. 그 판단이 끝나 있으니 반복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어요. 파일이 없거나 설정을 확인하지 못하면 그럴듯한 대체물을 만드는 대신 멈춰야 합니다.
익스포트 창의 설정만 보지 않고 실제로 나온 파일을 검사합니다. 구간 경계에서는 샘플 수와 프레임 시간이 어긋날 수 있어요. 렌더된 파일의 라우드니스와 트루피크를 다시 측정하고 공간 메타데이터도 다음 단계까지 유지됐는지 확인합니다. 청취 방향이 고정된 바이노럴 참고 음원은 일반 헤드폰으로 음악을 함께 검토하기 위한 파일입니다. 실제 재생 환경의 헤드 트래킹이나 최종 영상과의 싱크까지 확인해 주지는 않아요. 해시는 같은 파일인지 확인하는 도구고 장면이 살아 있는지는 들어봐야 압니다. 둘은 서로의 일을 대신할 수 없어요.
극장용 믹스를 가정의 근거리 청취 환경에 맞출 때는 대사와 효과음의 밸런스와 다이내믹스를 다시 판단해야 할 수 있습니다. 파일 형식만 바꾸면 끝나는 일은 아니에요. 실제로 재생할 조건에서 들어 볼 시간을 납품 일정에 포함하려고 합니다. 작업실 밖에서도 장면의 의도가 유지되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납품 파일 용량 계산비효율을 위한 효율
비효율을 위한 효율
음악에 마음껏 시간을 낭비하려고 작업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만듭니다. 손에 익은 단축키와 문제없이 열리는 세션이 있으면 쓸모없을지도 모르는 아이디어를 시험할 여유가 생겨요. 줄이려는 건 조작 때문에 생기는 지체입니다. 무엇을 만들어 볼지 고민하는 시간은 충분히 쓰고 싶어요. 이 연구실의 효율화 사업은 결국 딴짓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혼자 여러 역할을 맡아 보니 다른 사람과 작업할 때 달라지는 것도 더 잘 보입니다. 저도 기타를 치지만 다른 기타리스트는 제가 생각하지 못한 파트를 들려줄 수 있어요. 가수와 송라이터, 연주자, 마스터링 엔지니어에게는 각자의 감각이 있습니다. 제 방향을 갖고 시작하되 함께 작업하며 더 좋은 방향을 찾는 일이 좋습니다.
음악을 만들 때 이미지와 옷, 언어, 사람들이 그 음악을 만나는 장소까지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을 알면 어떤 소리가 필요한지도 더 선명해져요. 그렇다고 듣는 사람이 제작 과정을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공들인 편집을 하나씩 설명하지 않아도 음반 자체로 전달됐으면 합니다.
음악을 즐길 때는 유선 이어폰이나 휴대전화 스피커로 들어도 좋습니다. 사람이 가득한 영화관을 좋아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 듣는 것도 좋아해요. 작업할 때는 믿을 만한 청취 기준이 필요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데까지 같은 조건을 요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음악을 만드는 게 재미있습니다. 측정하고 배선을 바꾸는 이유를 끝까지 따라가면 결국 거기예요. 아주 작은 소리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게 되는 것도 좋습니다. 기타를 잡거나 한 번 더 연주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부분도 좋고요. 실험 결과 또 실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연구는 계속됩니다.




